“내가 백신 예방접종 하러 갔다가 어르신 소리를 들었네. 접종을 마치고 부작용은 없는지 15분 시간을 재가면서 기다리고 앉아 있는데 직원분이 ‘어르신, 시간 다 됐으니까 이제 가시면 된다’고 깍듯하게 말해주는데 집에 와서 자동으로 거울을 들여다보게 되더라고. 내 나이 아직 60도 안됐는데 어르신 소리를 들으니까 사실 엄청나게 충격을 받았지. 몸이 아프니까 아무래도 걸음도 빠릿빠릿하지 못했을 거고, 편안한 옷차림에 벙거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갔으니까 얼굴 확인도 안 되어서 나름 존중해 준다는 표현으로 그리 말했으려니 싶으면서도 우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구.”

100세 시대에 60도 안된 지인이 ‘어르신’이라는 호칭에 충격을 받고 마음이 꽤 상했습니다. 올해 72세이신 동네 지인분에게도 어르신이라는 호칭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떠실지 여쭤보니 “결코 유쾌하지 않다”고 답을 해주셨습니다. 

어르신은 ‘남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입니다. 필자도 ‘어르신’이라는 호칭이 상대방을 매우 높여드리는 말이라 여겨 줄곧 사용해 왔었는데 이분의 말을 듣고 보니 조심히 사용해야 하는 호칭인 것을 깨닫습니다.

“오늘 병원에 가서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데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000어머님! 다음 순서에 들어오실 준비 하세요!’ 하는데 순간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구요. 내가 간 병원이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찾는 병원이어서 습관적으로 부르는 호칭이려니 싶으면서도 아이들도 어린 젊은 나에게 어머님이라는 존칭보다는 얼굴을 쳐다보고 확인하고 구별해서 누구누구 씨라고 불러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저야 어차피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니까 그리 부를 수 있다 생각할 수 있지만 얼굴 확인도 안하고 일괄적으로 부르니까 어느 아가씨 환자에게도 얼마든지 그렇게 부를 수 있는 우를 범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꿀떡이었는데 그냥 입 다물고 돌아왔네요.”

‘어머님’이라는 표현은 다른 사람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기 위해 쓰는 말로 매우 존중하는 호칭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럽고 유쾌하지 않을 수 있었네요.

“그 동생은 언니라고 부르면 더 친근감을 느낄텐데 자꾸 선생님이라고 부르니까 거리감이 느껴져.”

‘선생님’이라는 호칭은 누구나 거부감 없이 좋아할 것 같은데 이분 말씀을 듣고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중학생 아들 또래 사이에 친구 이름을 부를 때  나름 구분을 두고 있었습니다.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에게는 성을 붙여 이름을 부르게 된다”면서 “또 남학생인 내가 여학생 이름을 부를때 성을 붙이지 않고 이름을 부르면 지나치게 다정하게 여겨져 엄청 친하거나 사귀는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성을 붙여 이름을 부르게 된다.”는  의견을 말해줍니다.  

최근에 복지관 배식봉사 현장에서 몸이 적잖이 불편해 보이는 장애인 분이 들어오시는 것을 보고 한 봉사원이 배려하는 마음으로 “앉아 계시면 제가 식사를 챙겨 갖다드리겠노라”고 말했는데 “제가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라고 거절하시면서 약간 언짢아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과도한 배려는 불쾌할 수 있습니다.

SNS에 올라온 글을 보니 배려한다는 차원으로 도서관에 장애인 이용실이 따로 만들어져 있는 것에 대해, ‘장애인이라고 해서 분리 배제 받고 싶지 않다. 비장애인처럼 일반도서실에서 넓고 방대한 책을 마음껏 보고 편리하게 이용하고 싶다’는 의견이 실렸습니다. 누군가는 배려의 탈을 쓴 배제라는 표현도 덧붙였습니다.

또 ‘장애인인 저도 비장애인들이 도와준다고 부축해 줄 때 도리어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도와주신다는 것이 오히려 더 걷는데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올라왔습니다. 두루 살펴보니 누구라도 과도한 친절과 배려는 도리어 불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가 내리던 한 날 마음 따뜻해 보이는 초등학생 한 아이가 비를 맞고 있던 길고양이에게 “고양이야, 젖으니까 춥지?” 하면서 우산을 씌워주고 앉아있던 뒷모습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아이의 조건 없는 사랑과 따뜻한 배려에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이렇듯 배려는 도와주거나 보살펴 주려고 마음을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칫 배려라는 명분을 가진 나의 언어와 행동이 경우에 따라서는 도리어 상대방을 더 불편하게, 혹은 불쾌하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배려한답시고 다른 사람의 처한 상황이나 생각을 헤아리지 못하고, 나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살아가면서 매사에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하여 배려도 호칭도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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