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성미 (주)서해렌탈 대표

▲ 기고- 김성미 (주)서해렌탈 대표

소싯적, 한가위 날이면 늘 풍성했던 기억이 난다. 평소에는 흔하지 않던 사과, 배는 추석 때는 넉넉히 먹을 수 있었고, 큼직큼직한 남도의 생선구이도 대바구니에 수북했다. 각종 부침개도 많았는데 소고기를 얇게 저며서 부친 쇠고기 육전은 어른들 안주로 쓰여서 아이들 차지는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번 늦게 오는 동서를 흉 보시면서도 동서의 애교에 넘어가기 일쑤였고, 어머니의 동서이자 나의 작은 어머니께서 집에 가실 때는 바리바리 싸주시곤 했다. 넉넉하지 않았던 시대였지만 명절이면 늘 풍성했고 우리는 그날을 기대하고 기다리곤 했다.


명절 뒷설거지가 끝나면 동네 아주머니들은 학교 운동장에 모였다.엄마를 따라간 운동장에는 이미 한복을 입은 이웃 아주머니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는 한복이 일상복이라서 특별할 것도 없었다. 아주머니들은 손에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하며 운동장을 돌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향이 남도라서 그런지 한가위에 강강술래를 하는 풍습이 그때까지도 남아 있었다. 그리고 굳이 이순신 장군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달 밝은 보름 밤에 모여 노는 그 시간은 아낙네들에게는 명절준비로 힘들었던 노고를 풀어지게 하는 시간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달 밝은 보름날 저녁 동네하늘을 울리던 그 소리는 차츰 들리지 않고, 나는 소녀가 되고 어른이 되어 충청도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시어머니께서는 한 달 전부터 술을 담그시고 보름 전에는 산자바탱이(유과)를 만드시고 일주일 전에는 배추김치를 담그시고 이틀 전에는 다식과 두부를 만드셨다. 명절 이삼일 전부터는 말할 것도 없이 바빴다. 종중 가장 어르신인 시할머니가 계신 시댁에는 일가 친척들이 끊임없이 인사를 하러 오셨다. 며느리들은 잠시라도 앉을 새가 없었다. 


명절을 지내고 나면 며칠씩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참 사람 사는 맛이 있었고 명절이면 모든게 풍성했다. 사람도 음식도 즐거움도..


이제는 사과, 배를 먹으려고 굳이 추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제철 과일이 무엇인지 구분도 가지 않게, 모든 과일이나 음식을 어느 때라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풍성함을 소망하며 명절을 기다리던 그때의 아이들과는 달리 이제는 아이들도 매일의 풍성함 속에서 굳이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지 않는다. 자꾸 약식화 되어 가는 명절 문화는 사람들의 편리함 속에 잊혀져 가고 퇴색돼 간다. 


명절에도 고향을 방문하는 대신 가족이나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늘었다. 그런 우리의 마음속에 고향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기대와 소망을 품었던 명절은 이제 우리의 아이들에게 또 어떤 의미일까!


하지만 아직도 명절의 풍성함을 소망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풍성하다고 모두가 풍성한 것은 아니다. 내가 넉넉 하다고 모두가 넉넉한 것은 아니다. 나의 풍성함을 나누고 나의 넉넉함을 감사할 때, 우리의 이웃도 풍성해 질 수 있다.


이 가을, 다가오는 한가위에는 우리와 나눌 수 있는 이웃을 돌아봄으로써 마음의 풍성함을 채우는 한가위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마음 따듯해지는 소식 오가는 한가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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