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날 오후 공식적인 회의 자리에 참석했는데 평소에는 없던 순서가 추가돼 있습니다. 어떤 분이 정치계에 발을 내딛고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주최 측의 배려로 잠시 단상에 오른 것입니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기꺼이 응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모두 귀를 기울이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회의조차 시작도 못한 상황에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으니까 슬슬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청중이 모두 여성인지라 회의를 마치고 나면 속히 가정으로 돌아가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하는 입장이 있는데 길어지는 연설에 급기야는 정작 중요한 회의에는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일어나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이 꽤 많았습니다. 퇴장하는 사람들의 낯빛은 하나같이 원망과 불평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청중이 만일 시간이 많고 여유가 있었더라면 상당히 감명 깊을 만한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니까 역효과가 났습니다. 특히 정치가는 말로 그 존재가치를 알리는 것인데 상황이나 경우에 합당하지 못한 말로 ‘센스 가 1도 없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으며 마음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요즘 여기저기에서 연말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행사장에서도 경우에 합당하지 못한 말로 낯을 찌푸리게 하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소중한 행사장에 초청받아 간단히 축하 메시지를 전해주라는 주최 측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저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며 소상히 알리는 일에 초점을 맞춘 정치인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또 준비되지 않은 인사말을 하면서 횡성수설하여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듣는 사람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주중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모임에서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 지를 서로 나누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한 분이 직장을 옮겼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만두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데만 20분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귀를 기울여 듣다가 점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한사람이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는 바람에 주어진 시간은 제한돼 있으니까 다른 사람의 발언기회를 빼앗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처럼 삶 가운데 경험한 실제 사례들을 보면서 상황이나 경우에 맞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깊이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니 지혜로운 솔로몬이 잠언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경우에 합당한 말을 은 쟁반에 금사과로 비유한 것은 그만큼 경우에 합당한 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인생선배 시어머니께 자문을 구해보았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말을 많이 허믄 못써. 꼭 필요한 말만 해야 써.”

“한 말씀 더 해주세요.”

“말을 많이 허믄 못쓴당게. 허고잔 말이 있어도 입을 꽉 닫아야 써.”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참 많으실텐데, 말로써 뿐 아니라 곧바로 실행에 옮기시는 어머니께서 참 지혜로우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자신의 말을 많이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잠언 25장을 끝 절까지 읽어보니까 ‘제어하라’고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잠 25:28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

말을 많이 하는 것 보다 제어하고 심사숙고하여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함으로 다른 사람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과, 반대로 우리가 무심코 내뱉은, 경우에 합당하지 못한 말이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음도 기억해야겠습니다.

해를 거듭하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더욱 경우에 맞게 어울리는 말, 경우에 합당한 정직한 말, 경우에 합당한 고운 말, 경우에 합당한 현명한 말, 경우에 합당한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도록 애를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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