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기다림은 무엇인가요?”

“답답함, 지루함, 초조함, 분노”

긍정의 아이콘이라 여겼던 지인의 뜻밖의 대답에 놀라며 그리 생각한 이유를 되물었습니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아들을 학교에 태워다 주고 직장을 가야하는데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려도 함흥차사 내려오지 않는 아들을 향한 제 마음입니다.”

그저 기다림은 늘 기대이고, 희망이고, 설레임이고, 그리움이고 그렇게 낭만의 아이콘인 줄 만 알았는데 이분의 답을 듣고 보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통 연락이 없어요.”

3년 전에 당진으로 귀농한 지인이 부동산에 서울 전셋집을 내 놓고 매일매일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분을 보니 기다림은 인내의 시간입니다. 기다림에 있어 인내하지 못하면 조급함이 생기고 불안해져 턱없이 낮은 가격에 던지는 결과를 낳고 결국 후회할 수 있습니다.

조급함은 기다리지 못하게 만들어 나와 다른 사람을 불행한 상황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신호등 앞에 기껏해야 2분 남짓 된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무단횡단을 하면서 사고를 당해 몸은 몸대로 망가지고 보상에도 불이익이 생길 뿐 아니라 애먼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기도 합니다.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도덕적인 신념도 실천할 수 있습니다. 10%나 할인해 주는 지역사랑상품권을 사기 위해 매월 첫 날 일찍부터 판매점 앞에 기다랗게 늘어선 줄을 따라 기다리는 일이 귀찮아 지인찬스를 이용하여 구매한 경험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기회만 있으면 특권을 누리려고 하는 사람의 욕심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음을 깨달아 줄을 서서 기다릴 자신이 없으면 10%나 할인해 주는 혜택도 과감히 포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양보와 배려도 결국은 기다림입니다. 서두르면 분명하게 보이는 이익 앞에서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이익 앞에서 물불, 혹은 앞뒤 가리지 않고 질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모습은 쓴웃음을 짓게 합니다.

자식을 기를 때도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혼자서 대소변을 가리고, 혼자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가르침 앞에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혼자서 대소변을 가릴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할 때 아이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불안해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엄마도 아이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읍내에 나가신 어머니를 기다림의 보상은 언제나 선물이었습니다. 연애시절 기다림은 고통이었고, 그리움이었습니다. 장거리 연애여서 늘 님을 실은 버스가 떠나는 것을 잡지도 못하고 바라만 봐야 했으니까 고통이었고, 만날 날을 고대하는 매일 매일의 기다림은 그리움이었습니다. 이렇게 기다림은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의 고통을 기꺼이 감당하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간호사시절에 경험했던 기다림은 특별합니다. 어떤 환자에게는 인내해야 할 시간을 버티고 나면 회복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올 때 입었던 옷을 챙겨 입고 퇴원하는 날을 상상하며 거뜬히 기다림을 즐기는 분이 있는가 하면, 기다려 봐도 희망이라고는 1도 기대할 수 없이 그저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캠핑을 즐기는 한 지인은 불멍을 때리면서 멈춤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자연과 하나 됨을 느낄 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깊이 묵상하고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된다고 고백합니다. 이분의 말대로 기다림은 멈춤입니다. 생각을 멈추는 순간 마음이 비워집니다.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생각에 온통 사로잡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생각을 멈추고 나니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을 경험했습니다. 생각을 멈추고, 걸음을 멈추고,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차분히 생각을 이어가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삶, 정신이 건강한 삶의 비결이 아닐까요. 자신에게 생각을 가다듬고 정비할 시간을 주면서 스스로를 기다려 주는 일도 꼭 필요하다 여겨집니다.

우리는 지금 곧 다가올 성탄절을 기다리고 있고, 올해 마지막 날 밤은 재야의 종소리를 10, 9, 8, 7, 6.... 초를 세어가며 밝아오는 새해를 숨죽여 기다리겠지요. 숫자 0을 외치는 순간 힘차게 시작될 새해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기대도 있고 설레임도 있습니다.

낚싯꾼은 대어를, 누군가는 삶 속에서 얽힌 문제로 재판 결과를, 다툰 연인에게 진심을 다해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놓고 긍정의 답을 기다리는 사람도, 수능을 치른 고3수험생들과 회사에 지원하여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예비 신입사원도 있겠네요!

지금 독자님에게 ‘기다림’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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