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대첩 장계전달




선조임금은 평안도 의주로 피난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한편 이순신의 수군은 5월에 옥포, 당포, 당항포,에서 대승을 거두고 7월에는 한산도 대첩으로 남쪽 바다를 조선 수군이 장악함에 따라 호남지방을 침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적장 고바야까와가 전라도를 치기 위해 거창, 지례, 황간을 거쳐 임진년 7월 1일 무주를 점령하고 금산에 침입하였다.



그후 9월 19일 퇴각할 때까지 75일간 무주, 금산을 근거지로 삼았다. 적은 전주 점령을 목표로 일진은 용담, 진안을 거쳐 전주로 또 일진은 진산을 치고 전주로 침입하려 하였다.



권율장군은 자신이 직접 이치를 막고 김제 군수 정담에게 웅치를 막게 하였다.



웅치전은 나주 판관 이복남과 의병장 황영 김제 군수 정담등이 진지를 굳게 지키고 적을 맞아 죽음으로 항전하였으나 임진년 7월 8일 왜적의 전면공격으로 정담과 종사관 이풍이 전사하고 해남 현감 변응정은 중상을 입는 등 많은 희생을 하고 아군은 패전하였다.



그러나 왜적이 전주에 침입하는 것을 저지하는 성과를 얻었다.



웅치재는 진안군과 전주사이에 있는데 노령산맥 중에서 가장 높은 고개이고 이치재는 금산군 진산에서 전주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두 고개는 모두 전주의 관문이다.



군율장군은 동복 현감 황진과 함께  이치재로 달려갔다.